납치감금조교 자작야설 7화
아따 무려 3개월만에 올리네
그 동안 잠깐 다른 데에 집중하느라고 이거 진도를 못 나간것도 있었고
건강이라던지 기타등등 이슈도 겹치는 바람에 가뜩이나 느린 글이 더 느려졌었음...
뭐 그건 그거고, 암튼 즐감
얼마 지나지도 않은 선택이 벌써부터 후회가 됐다. 한숨을 참는 것도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아마 내 인생에서 지금이 가장 인내심을 시험받고있는 때가 아닐까 싶었다.
20분 지났댄다, 20분. 전체가 2시간이랬는데 그 중에서 달랑 20분. 그러면 앞으로 남은 시간이 1시간 40분이고, 지금까지 보낸 시간의 다섯 배다. 기분이 암담해지는 숫자놀음이었다.
"지루해?”
정신을 차려보니 남자의 얼굴이 바로 코앞에 다가와있었다. 가까웠다. 갑자기 다가온 얼굴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 반응이 재밌었는지 남자는 쿡쿡 소리를 내며 작게 웃었다.
“마침 나도 조금 지루해지고 있던 참이야. 아무리 쓰다듬어도 너는 이렇다할 반응 하나도 보여주질 않고 말이야⋯⋯. 그래도 뭐.”
남자는 갑자기 움직이던 손을 멈추고, 짝! 하는 소리가 울릴 정도로 내 허벅지를 때렸다. 갑작스러운 자극에 "하읏!" 하고 비명에 가까운 소리가 무심코 새어나왔다.
“피부 자체가 이렇게나 곱고 매끈매끈하니까 만지는 재미는 얼마든지 있지만 말이지.”
남자가 다시 손으로 허벅지를 문지르자, 찌릿찌릿한 자극이 맞은 부분에서부터 허벅지를 타고 퍼져나갔다. 찌르르 퍼지는 고통이 잠시동안 둔해져있었던 수치심과 혐오감을 자극했다.
⋯⋯변태. 그 생각밖엔 들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2시간동안 계속 이것만 하고있을 수도 없지. 충분히 쓰다듬은 것 같기도 하고, 슬슬 자세라도 좀 바꿔볼, 까⋯⋯.”
그리 말하며 남자는 마지막이라는 듯 허벅지를 한 번 길게 쓰다듬은 뒤 내 몸에서 손을 떼고 몸을 일으켰다. 그 말과 행동에 기껏 구속이 풀린 시원함 보다도 '또 뭔 짓을 하려고?' 하는 불안감이 앞섰다. 계속 붙잡혀있던 손목도 드디어 풀리고 다리도 마음대로 닫을 수 있게 됐는데도 기쁘기는 커녕 오히려 마음 한켠이 무거워지는 기분이었다.
“이쪽으로 오렴.”
불안한 마음으로 손목을 매만지고 있었더니 남자가 불렀다. 남자는 침대 위에 앉아 자기 다리 사이 시트를 손으로 툭툭 두드리고 있었다. ⋯⋯와서 앉으라는 거겠지. 딱봐도 밀착이 심해보이는 자세였다. 반라에 가까운 옷상태로 남자에게 밀착해서 앉아야 한다니, 생각만으로도 얼굴에 피가 쏠리는 기분이었다.
물론 거부권은 없었기에 결국 나는 쭈뼛쭈뼛 망설이면서도 남자 근처로 천천히 기어갈 수 밖에 없었다.
가까이 가자, 남자는 내 어깨를 잡아 일으키고는 나를 자신의 다리 사이에 앉혔다. 그리고는 마치 연인이 포개어앉듯 나를 자신 쪽으로 당겨서 밀착하게했다. 등에서 느껴지는 살갗의 단단함과 타인의 체온. 소름이 돋았다. 귓가 가까이에서 들리는 숨소리, 하반신 주변을 맴도는 두 손, 얇은 옷감 너머로 느껴지는 커다란 몸. 모든 요소 하나하나가 나의 수치심을 사정없이 자극해댔다.
얼굴이 뜨거웠다.
“움찔움찔 반응이 좋네. 부끄러워?”
추가타를 가하듯 귓가에서 속삭이는 남자의 목소리에 나는 더욱 몸을 굳혔다. 아무런 대꾸도 못하고 굳어서 가만히 있는 내 모습에 남자는 쿡 웃으며 다시금 속삭였다.
"금새 익숙해 질거야. 그걸 위한 연습시간이니까. 안 그래?"
그리고 남자는 내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 배를 만지작거리는 것으로 시작해서, 허벅지를 한 번 끈적하게 쓰다듬고, 다시 위로 올라와 내 양 팔을 매만졌다. 조물조물 감촉이라도 즐기는 듯이 움직이는 남자의 손. 팔은 원래라면 그렇게까지 만져지기 싫은 부위는 아닐테지만, 지금만큼은 이 자세 때문인지 미칠듯이 싫었다.
"얇네. 운동 좀 해야겠어.”
"⋯⋯괜한 참견이에요."
남자의 말에 반발심이 생겨 가시 돋힌 한마디가 무심코 튀어나왔다. 말하고 나서 아차 싶었지만, 다행히도 남자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 듯 어깨만 살짝 으쓱거릴 뿐이었다.
"뭐, 그 얘기는 나중에라도 다시 하기로 하고⋯⋯ 지금은 여기에 집중해야지.”
그리 말하며 남자는 주무르던 내 팔에서 손을 떼고는, 그 손을 아래쪽으로 옮겼다. 또 허벅지인가. 페티쉬라도 있는걸까. 지긋지긋한 마음과 도무지 꺼지질 않는 불쾌감, 수치심이 한데 뒤섞여 속이 착잡해졌다.
“⋯⋯간질간질♪”
“아힉?! 아, 흐, 흐아?! 자, 잠깐! 잠깐만!”
그리고 남자의 다음 행동에 자잘한 고민은 휙 날아가버리고 말았다.
남자가 손톱을 세워 내 허벅지를 약하게 긁었다. 닿을랑말랑, 절묘하기 짝이 없는 거리에서 간지럽혀대는 남자의 손가락. 신경을 타고 온 몸에 퍼지는 참기 어려운 감각에 나는 무의식적으로 몸을 비틀어대며 움찔거렸다.
짜릿하다고도 찌릿하다고도 표현할 수 있는 감각이 머릿속을 가득 메우고, 부들부들 떨리는 온몸이 제멋대로 튀어올랐다. 목에서는 자신의 것이 아닌 듯한 목소리가 멋대로 흘러나왔다.
“아, 흑! 흐, 으아아⋯⋯! 잠깐, 잠깐만?! 멈춰주⋯⋯?! 하으으으!”
“음음. 좋은 목소리야. 잔뜩, 느긋하게 쓰다듬어서 민감하게 만들어놓은 허벅지니까⋯⋯. 응, 노력한 보람이 있네. 듣기 좋은 목소리야. 귀여워. 정말로 귀여워. 좀 더 울어주렴?”
"후, 후아. 아으으⋯⋯!”
남자가 뭐라고 말하는지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웃음과 비명, 그 사이 무언가에 호흡을 빼앗겨 숨이 가빠져왔다. 너무 웃었을 때처럼 배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남자는 손가락을 멈추지 않았다. 거기다 자신의 다리로 내 다리를 눌러 벌려놓은 탓에 나는 남자의 손을 피해 다리를 닫는 것도 할 수 없었다.
"히약?! 그, 그만……. 그마안……! 핫. 히야앙……. 흐아아?!"
의식과는 관계없이 멋대로 튀어나오는 내 비명 속, 남자는 즐겁다는 듯이 훤히 드러난 내 허벅지 안쪽을 사정없이 간지럽혔다. 과한 자극에 머릿속이 따끔거렸다.
"다, 다리라도……. 하다못해 다리라도 닫게 해주세……! 앗, 힛?! 하아……! 아아……!"
"응~? 왜?"
능청 떠는 것만 같은 남자의 목소리. 그것에 신경쓸 틈도 없이 나는 비명지르듯 말했다.
"수, 숨이 안셔져서! 머리가, 이상해질것만 같……!”
“응응. 그건 큰일이네. 조금만 더 힘내보자? 말 그대로 숨이 넘어가기 전에는 멈춰줄 테니까.”
좀 봐달라고, 그렇게 말할 숨 조차도 이제는 없었다. 소리가 되지 못한 비명을 지르며 그저 헐떡이고 있던 중 남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뭐, 농담이지만.”
그리 말하며 남자는 내 허벅지를 간지럽히던 손을 멈췄다.
“후, 하아아……. 아……?”
설마 진짜로 멈춰줄 줄은 몰랐다.
다행이라는 두글자로 머리가 가득 차는 기분이었다. ‘왜 멈춰줬지?’라는 어렴풋한 의문은 있어도 지금은 그것보다 호흡이 더 중요했다. 나는 겨우 받은 휴식 시간동안 필사적으로 어깨를 들썩여 공기를 들이쉬고 내쉬며 숨을 골랐다.
“아무리 그래도 진짜로 망가질 때까지 괴롭힐 수는 없지. 오랫동안 즐기고 놀려면 휴식도 필요한 법이니까 말이야. 안 그래?”
열심히 숨을 고르던 중 뒤에서 중얼거리듯 들려온 말은 나에게 다소 소름이 돋는 것이었다. 동시에 그것은 방금 품은 어렴풋한 의문의 해답이기도 했다.
‘오래 즐기기 위해 쉬게 해준다’. 그 뿐. 즉, 자비가 아니라 농락이다. 실신조차도 허용해주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했다. 그것을 이해한 순간 나는 무의식적으로 팔다리를 꿈틀거리며 저항을 시도했다. 했지만, 저항은 남자의 힘에 눌려 아무런 빛을 보지 못했다.
도망칠 수 없다.
“왜, 왜……?”
그런 상황에서 헐떡이는 입에서 흘러나온 것은 스스로도 의도를 알 수 없는 한마디였다. 부들부들 떨리는 그 목소리에는 공포가 서려있었다는 것을, 나는 귀로 듣고 나서야 비로소 자각했다.
두렵다. 저항할 수 없는 이 상황이, 자기 자신의 몸의 제어를 빼앗기는 듯한 그 감각이 두려웠다. 그래서 였을까, 나는 떨며 질문했다. 왜냐고.
“글쎄, 본격적인 조교의 사전 연습으로는 꽤 적당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내 한마디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모를 남자의 대답은 상당히 간결했다. 그렇기에 충격일 수 밖에 없었다.
‘사전 연습’이랜다.
‘본격적인 조교의 사전 연습’이랜다.
아니, 물론 알고는 있었다고 생각했다. 당장 몇 분 전에 남자가 했던 말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건 너무, 너무…….
“자, 충분히 쉬었지? 다시 갈게.”
“힉?!”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거기까지였다.
남자가 손가락을 움직이고, 나는 다시 퍼지는 감각에 억눌린 비명을 질렀다. 헐떡이고, 그저 농락당할 뿐. 팔다리가 구속당한 지금의 나는 너무나 무력했다.
간지럽힘당해 비명을 질러대다보면 겨우 회복해놓은 호흡이 금새 바닥이 난다. 그럼 그 이후로는 그저 몸부림치며 한결같이 헐떡일 뿐. 헐떡이고 헐떡이고 헐떡이며 헐떡이다가,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게 됐을 쯤 다시 휴식.
“후우……. 하아……!”
잠깐의 휴식이 끝나면 다시 괴롭힘의 시작. 사정없이 간지럽히다가, 숨이 가빠서 눈앞이 흐려질 지경이 되면 잠깐 강도를 낮춰서 또다시 휴식. 그리고 어느 정도 쉬었다 싶으면 다시 사정없이 간지럽히고⋯⋯. 그것을 몇번이나 반복.
간지럽혀지고, 잠깐 숨을 돌리고. 저릿함에 신음하고, 가쁘게 숨을 내쉬고. 몸을 부들부들 떨고, 추욱 탈진한 채 등 뒤에 기대고. 떨리는 목소리로 중지를 애원하고, 새하얘진 머리로 의식을 잃지 않으려 애쓰고⋯⋯.
시간 감각이 사라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흐으⋯⋯. 하아⋯⋯. 하아⋯⋯. 하아아⋯⋯⋯⋯.”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르겠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침대 위에 힘없이 널부러져있었다.
느껴지는 것은 지독한 피로감과 다리를 중심으로 퍼져있는 저릿함. 숨은 가빴고 시야는 눈물 범벅으로 흐렸으며 완전히 탈진해서 땀으로 흠뻑 젖은 몸은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도 힘들었다.
간지럽힘은 어느샌가 끝난 모양이었다. 눈알만 굴려 시계를 쳐다보니 바늘이 가리키고있는 시간은 대략 4시. 계산해보면 30분 넘게 간지럽힘만 계속 받았다는 소리가 된다. ⋯⋯몸에 힘이 안 들어갈 만도 하다. 의식이 끊기기 직전인 머리로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응응, 수고했어. 용케도 기절하지 않고 버텨줬네. 덕분에 귀여운 목소리도 잔뜩 들을 수 있었고⋯⋯. 응, 만족이야."
움찔움찔 몸을 떠는 나를 내려다보며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는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별로 좋은 기분은 아니었지만, 어차피 저항할 기력도 없었다. 나는 움직이지 않은채 그냥 쓰다듬어지는 대로 가만히 누워만 있었다.
“이번 조교는 슬슬 끝낼게. 솔직히 좀 더 괴롭히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니지만 뭐⋯⋯. 첫 조교기도 하고, 이번엔 이쯤에서 끝내는 게 맞겠지.”
쓰다듬어지던 중 들려온 남자의 말은 낭보였다.
드디어 쉴 수 있다. 드디어, 드디어 남자와 떨어질 수 있다, 옷을 입을 수 있다. 지독한 간지럽힘과 호흡곤란과도 안녕이다. 정말 당연한 것들일텐데도 이렇게나 기뻤다. 납치감금이라는 비정상적인 상황의 폐해겠지. 그렇다고 해도 기쁜건 기쁜거다. 지금만큼은 솔직하게 좋아하도록 하자.
“그래도 약간은 아쉬운 걸. 이번이 첫 시간만 아니었으면 좀 더 괴롭혀줬을텐데.”
미련이 있는듯한 남자의 목소리.
끔찍하다. 그렇게나 사람을 만져댔으면서 대체 뭐가 아쉽다는 건지. 그래도 방금 본인 입으로 슬슬 끝내겠다고 말한 참이다. 이 이상으로 뭔가 이상한 짓을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방심한 것이 문제였을까.
남자가 내 다리 사이로 손을 뻗었다.
“햐앙⋯⋯. ⋯⋯⋯⋯⋯⋯?”
미끄덩, 하고 남자의 손가락이 내 속옷 위에서 미끄러지는 감촉.
지친 몸이 다시 한 번 움찔 튀어오르고 입에서는 야릇한 목소리가 무의식 속에서 새어나왔다.
찌릿하고 허리를 타고 올라와 온몸에 퍼지는 미지의 감각. 간지럼과도 비슷하지만 결정적으로 무언가가 다른, 느껴본 적 없는 감각.
“그래도 뭐 이만큼이나 젖었고. 이 정도면 만족 못할 것도 없나.”
자뭇 당연하다는 듯이, 별 이상할 것도 없다는 듯이 내뱉어지는 말.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젖어?
어디가?
"무, 무스⋯⋯. 아, 어⋯⋯?"
안 그래도 부족한 숨이 더욱 가빠져오는게 느껴졌다.
혼란스러운 머리. 어지러운 시야.
그리고 남자의 두 손가락 사이에서 끈적하게 늘어지는 흰색 실.
“뭐, 가⋯⋯. 하아⋯⋯. 아⋯⋯.”
“뭐기는, 애액이지. 직접 보는 건 처음이야?”
남자는 나를 보며 재밌다는 듯 웃었다.
애액. 여성이 성적으로 흥분했을 때 성기에서 분비되는, 점성이 있는 액체.
단어의 뜻은 알고있다. 그 정도는 배워서 알고있다.
하지만 단어와 지금의 상황이 연결이 되질 않았다.
왜 나는 그런걸 흘리고있지?
납치당하고, 감금당하고, 낯선 남자에게 붙잡혀 한참동안이나 몸을 농락당했다.
기분 나쁠 뿐이다. 기분 나쁠 뿐인데, 그런데 왜.
왜 젖었지? 내 몸은 어떻게 돼버린거지? 대체 왜? 왜, 왜?
“허벅지는 어엿한 성감대지. 뭐, 발달하지 않은 경우도 어느정도는 있다만⋯⋯ 너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네. 덕분에 편해지겠어.”
찌걱, 찔꺽. 손가락에 묻은 액체로 끈적한 소리를 내보이며 남자는 별 일도 아니라는 듯 말했다.
그리고 쿡 웃고는, 나와 눈을 마주치며 말을 이었다.
“충격받았어? 자기가 낯선 남자에게 몸을 만져지는 것만으로 보지를 적셔버리는, 음란한 여자라서?”
“?! 너⋯⋯!”
“그거 오해니까 안심해도 돼.”
울컥, 하고 순간적으로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오르는 격렬한 감정.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을 진정시킨 것 또한 남자의 말이었다.
마치 학생을 가르치는 듯한 말투로, 어딘가 즐거운 기색마저 띄며 남자는 말을 이었다.
“애액은 꼭 흥분했을 때만 흘리는 게 아니거든. 특정한 자극이 주어졌을 때도 몸을 지키기 위해서 멋대로 분비되지. 예시를 들자면, 추우면 소름이 돋는 것하고 비슷하겠네. 흥분하지 않아도, 설령 기분이 나쁘더라도 조건만 맞으면 보지는 젖어. 그게 정상이야. 너무 걱정하지 마. 딱히 네가 특별히 음란하거나 한 건 아니니까.”
"⋯⋯."
남자의 말에 솔직하게 안도감을 품는 내가 있었다.
치밀어 오르려던 감정이 사그라들고, 혼란스러웠던 마음이 차틈차츰 정리되어가는 게 느껴졌다. 다만 농락당한것만 같아서 기분은 별로였다. 힘이 들어가지 않는 몸에 안도감과 불쾌함이 동시에 퍼졌다.
"아직 첫날이고, 넌 일반인이잖아. 벌써부터 음란해져있을리가 없고, 그러면 재미도 없지. 이번엔 어디까지나 감도 체크만 한 것 뿐이야.”
거기까지 말하고 남자는 잠시 입을 다문 뒤, 얼굴을 들이밀어, 코가 닿을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조용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본격적인 조교는 오늘 저녁부터야. 느긋하게 잔뜩 시간을 들여서 음란하게 만들어 줄테니까, 기대해도 좋아.”
다시 얼굴을 뗀 남자의 얼굴에는 마치 장난감을 발견한듯한 기대감이 가득했다. 불쾌하고 짜증나서 이라도 뿌득거리고 싶은데, 그럴 힘마저도 없어서 그저 얼굴을 찡그리는 데에서 그쳤다.
지쳤다. 어찌됐든 빨리, 빨리 쉬고싶다. 뭐가됐든 좋으니 혼자가 되고싶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수고했어. 난 먼저 갈테니까, 여기서 좀 쉬다가 움직일 수 있으면 아까 처음에 일어난 방으로 돌아가면 돼. 돌아다니는 건 자유지만 7시 저녁시간에는 아까 식당으로, 9시에는 여기로 각각 늦지 않게 올 것. 알았어?”
나는 듣는둥 마는둥 하며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빨리 눈앞에서 사라져줬으면 좋겠는데 말도 많다.
“그래.”
남자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는 침대에서 일어나 그대로 방 밖으로 걸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