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기애애한 분위기의 파티, 오늘도 열심히 던전을 돌고 술집으로 돌아와서 식사를 하고 있다. 식사 와중에 중요한 말이 있다며 파티원들의 집중을 모은 탱커는 돌연 은퇴를 선언하는데...
은퇴라는 단어를 내뱉는 순간 맥주에 끼는 살얼음, 문이 열리면서 살을 에는 칼바람이 그를 스친다. 그는 순간 추워서 뒤돌아 일어서느라 앞의 동료들의 표정을 못 본 것이 다행이었다. 그들은 마치 침입자를 발견한 골렘과도 같은 없애야할 것을 본 듯한 표정이었으니까. 무감각한, 혼이 깃들지 않은 무기질적인 인형과도 같은 그 소름끼치는 표정. 아니 애초에 칼바람은 우연이었을까?
탱커가 문을 닫으니 그 단백질 인형들은 탱커의 허리를 향해 몸을 던졌다. 그녀들은 울먹이며 왜용왜용하고 고양이처럼 애처롭게 운다. 눈치빵점인 멍청한 탱커는 그저 자신의 꿈을 이룰 돈을 다 모았다고 말을 한다. 여자들은 탱커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탱커가 없으면 파티가 어떻게 붕괴될 지 상세하게 말하면서 제발 다시 생각해달라고 역청마냥 질척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동앗줄인지 모르는 둔탱이 떡대는 그 기회를 발로 차버린다. 울고불고 하던 여자들이 갑자기 마력이 다한 골렘처럼 움직임을 멈췄다.
"... 그래..? 어쩔 수 없네."
푸욱
"패럴라이즈"
탱커의 몸에 꽂힌 정체불명의 막대기, 세상이 그의 눈 앞에서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리고 땅이 그에게 다가온다. 폭신한 바닥, 고소하고 달콤한 냄새의 마시멜로에 파묻혀 세상이 깜깜해지는 가운데 들린 나직한 목소리
"이제 넌 우리꺼야"
애초에 평화로운 방법으로도 돈을 벌 방법이 하늘의 별 만큼이나 많은 마법사도, 돈을 갖다바치려는 사람이 사방에 널린 치유사도, 귀족부인들이 사랑하는 마수의 모피만 모아도 되는 사냥꾼도, 풀플레이트 아마를 가진 기사가 그깟 모험을 하는지에 대해 생각을 안 하였으니 그의 운명은 이미 정해진 것과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