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닉네임으로 검색해보면 예전에 써둔 게 있을거임.
이건 3화니까, 이전 거를 보고 오는 걸 추천함.
저번거 올린게 무려 3월 말이었으니까.. 자그마치 3개월 만의 다음화네
매일 끄적이고는 있었는데 중간에 몇 번 갈아엎어버려가지고 좀 많이 늦게 완성된듯
내꺼 계속 보고있다고 댓 달아준 친구 있었는데 그 친구도 기다리다 지친거 아닌가 모르겠네
쨌든, 즐감
감상은 ㄳ
참고로 쥰내 별 내용 없음
방 밖에 있던 것은 창문이 없는 복도였다.
지하여서 그런건지 뭐 때문인지는 몰라도 창문이 하나도 없는 걸 제외하고는 크게 특이한 점 없는 복도였다. 바닥은 나무에, 벽면은 부드러운 흰색. 근처에는 내가 방금 나온 곳 외에도 같은 모양의 방문이 몇 개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서 있었다. 왠지 아파트나 호텔 같은 인상이었다.
“이 근처는 개인 생활 공간. 주변에 있는 게 다 개인실이야. 네가 앞으로 주로 지내게 될 곳이지. 침대부터 시작해서 탁자, 책장, 옷장 등 있을 건 다 있고 구조는 방끼리 대강 다 비슷해. 방 갯수는 합쳐서 총 10개정도 있으니까⋯⋯ 별로 큰 차이는 없겠지만, 위치는 원하는 곳을 골라도 돼. 좀있다 고르게 해줄게.”
호텔 같다고 느낀 내 인상은 아무래도 틀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간단한 설명을 마친 후 남자는 양쪽으로 이어진 복도중 한쪽으로 천천히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런 남자의 뒤를 나도 일단은 얌전히 따라 걸어갔다. 남자가 걸어가는 사이 반대쪽 복도로 냉큼 도망쳐버릴까 라는 생각도 하기는 했지만, 길도 모르고 수갑도 차고있는데 도망칠 수 있을리가 없으니까 금방 관뒀다.
“긴장했어?”
그렇게 잠시 복도를 걷던 중 남자가 잡담이라도 하려는 듯한 가벼운 말투로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솔직히 말을 섞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무시해서 미움받을 수도 없었으므로 일단은 뭐라도 대답을 해야했다. 하지만 딱히 할만한 말이 생각나질 않았다. 계속 생각을 해보아도 적당한 대답이 떠오르질 않아서 고민하다가, 일단은 뭔가 시덥잖은 말이라도 떠들어봐야겠다는 생각에 나는 입을 열었다.
아니, 열려고 했다.
“⋯⋯?”
입이 열리질 않았다. 무슨 일인지 놀라서 손으로 더듬어보니, 딱딱하게 굳은 입술의 감촉이 느껴졌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주변 공기는 분명 따뜻했음에도 내 피부는 이상할 정도로 차게 식어있었다. 입술도 차가웠고, 그 이상으로 손끝은 더 차가웠다.
억지로 힘을 줘서 입술을 열었더니, 이번에는 제멋대로 부들부들 떨리는 탓에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작게 딱딱 소리를 내며 이가 부딛혔다. 마치 한겨울날 밖에 한참 나가있었던 것만 같았다.
“어, 라⋯⋯.”
지금까지 겪어본 적 없을 정도로 몸상태가 이상했다. 깊은 심해에 처박힌 것 마냥 온몸이 너무 무겁고 추웠다. 심장이 뛸 때마다 가슴이 욱신욱신 아파왔다. 시야가 일렁이고 머리는 지끈거려서 토가 나올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제서야 겨우, 나는 내가 지금 긴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신히 깨달을 수가 있었다. 그런 간단한 것조차 방금까지 모르고있었다. 중증이었다.
"흐음. 뭐, 힘들면 굳이 대답 안 해도 돼. 편히 있어.”
남자가 하는 말이 어딘가 멀리서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한 번 긴장을 자각하고나니 정말 고역이었다. 제대로 걷고는 있는건지, 제대로 숨은 쉬고 있는지. 그저 시야 한 편에서 팔랑팔랑 흔들리는 남자의 옷가지를 쫓아 걷는지 기는지 구분도 안되게 움직였다. 언제 쓰러져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시작부터 참 전도다난하네. 조금만 더 참아. 거의 다 왔으니까.”
비틀비틀 남자의 뒤를 쫓아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다시 오른쪽으로. 그렇게 잠시동안 복도를 걸어가니 한 공간이 눈 앞에 드러났다. 넓직한 공간에 놓여진 긴 탁자, 의자, 벽 한 편에는 여러개의 수납장들. 거기에 특이하게도 이 공간에는 천장에 큰 창문이 하나 달려있었다. 그냥 창문이 아니라 뿌연 창문이라서 하늘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복도에는 창문이 전혀 없었던 터라 천장에서 비춰들어오는 햇빛은 정말이지 반가웠다. 눈이 부시고 따뜻하고, 쬐고있으니 몸이 아주 약간이지만 편해지는 느낌이었다.
“아무데나 앉아. 앉아서 잠깐만 쉬고있어.”
나는 별다른 대꾸 없이 끝자리에 있는 의자에 가서 앉았다. 의자에 앉아 탁자위에 손을 올려놓으니, 손목에 채워진 수갑이 눈에 들어왔다. 그걸 보니 새삼 감금당했구나 라는 실감이 들어서 다시금 우울해졌다. 속이 울렁거렸다.
물론 지금 이게 아주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다. 오히려 납치당한 것 치고는 아주 희망이 넘치는 편이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있다. 잘 알고있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희망의 흥분이 가시고나니 미래에 대한 걱정과 긴장이 온 몸을 짓눌러댔다. 계속 희망차게만 있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인간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는 안 되는 모양이다. 아까 방에서 설명을 들을 때까지만 해도 꽤 팔팔했는데 지금은 긴장 때문에 죽을 맛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토할 것 같았다.
“으으⋯⋯.”
나는 탁자 위에 반쯤 엎어진 채 남자가 있는 쪽을 쳐다봤다. 남자는 한쪽 벽에있는 수납장에서 무언가를 꺼내는 중이었고, 잠시 기다리자 꺼낸 무언가를 들고와서는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달칵, 하는 도자기 소리가 작게 울렸다.
"⋯⋯찻잔?"
"그래, 찻잔. 차는 좋아하니?"
남자는 능청스럽게 대답하며 내 앞과 그 반대쪽에 찻잔을 하나씩 밀어놓았다. 그리고는 들고온 주전자 안에 무슨 허브 같은 것을 넣고는, 다시 뚜껑을 닫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솔직히 좀 수상쩍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갑자기 웬 차인가 싶었다. 개인적으로 차는 별로 싫어하진 않지만,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함정이라던가 약물이라던가 그런 종류의 것들이 먼저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과한 걱정일 거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정말로? 하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었다.
"너무 그런 눈으로 보진 마. 평범한 차니까."
“⋯⋯.”
뜨끔했다. 내가 그렇게까지 노골적으로 의심하는 눈을 했나싶어서, 불안함을 얼버무리려 눈가를 손으로 비볐다. 그런 나를 묘한 눈으로 바라보며 남자는 주전자의 내용물을 천천히 찻잔에 따랐다.
“그냥 진정용 허브차야. 좀 심하게 긴장한것 같길래, 첫 날이니까 호의를 좀 배풀어줄까 했지.”
“⋯⋯감사합니, 다⋯⋯.”
졸졸 물소리와 함께 내 앞의 찻잔에 연노랑빛 액체가 조금씩 차올랐다. 다 따르고 나서 남자는 다른 하나의 찻잔에도 졸졸 차를 따르고는, 주전자를 내려놓고 내 바로 맞은편 자리 의자에 가서 앉았다. 생각보다 거리가 가까웠다. 가까이서 얼굴을 마주보는 일 따위는 당연히 할 수 있을리가 없었기에 나는 슬쩍 고개를 숙여 찻잔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예쁜 색의 차다, 라는 별 쓸모없는 감상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차에는 손도 대지 않고 잠시 그렇게 고개를 숙이고 있자니 앞에서 달칵 하는 작은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지만 찻잔을 드는 소리 같았다. 이어서 들리는 후룩 소리. 그 소리에 숙이고있던 고개를 살짝만 들어올리자 조금 넓어진 시야 사이로 남자가 차를 마시는 모습이 보였다. 묘하게 교양있어보이는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어 잠깐 보고있었더니,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보다시피 독 같은 건 없어. 편히 마셔도 되는데?”
남자가 슬쩍 눈웃음을 지었다. 나는 다시 급히 고개를 숙였다.
“음~ 긴장하고있는 건 알겠지만 말이지. 그래도 계속 그렇게 굳어있는 상태면 좀 곤란한데⋯⋯.”
가슴이 콩닥거렸다. 혹시 너무 쭈뼛댄 탓에 남자의 신경에 거슬려버린 게 아닐까 생각하면 머리가 아찔했다. “좀 곤란한데⋯⋯” 다음에 이어질 말이 뭐가 될지 걱정이 멈추질 않았다. 물론 상황상 난폭한 일이 벌어질 가능성은 적다. 머리로 알고는 있지만, 그걸로 납득할 수 있었음 이렇게 벌벌 떨면서 고생하지는 않았다.
뭣보다 수갑이 문제였다. 이게 채워져있는 한 나는 남자에게 반항할 수가 없다. 공격은 당연하고 도망도 여의치 않다. 이 수갑이 있는 한 나는 절대적으로 ‘을’이며, 그저 빌빌기며 남자의 눈치를 살피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게 없었다. 양 손목에 채워진 은색 고리를 볼 때마다 우울감이 솟아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래, 그게 문제구나?“
남자가 갑자기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그와 거의 동시에 앞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희미한 쇳소리가 들렸다. 나는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있어서, 남자가 무얼 하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손 내밀어봐.”
명령투였다. 거절한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만일 있다고 한들 고를 수 있을리도 없었다. 나는 한 번 움찔 떨고, 얌전히 양 손을 내밀었다.
손을 붙잡히는 감촉, 쇳소리. 고개는 여전히 숙이고있는 채였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쳐다볼 용기가 없었다.
짤그락, 철컥, 끼익. 갖가지 불길한 소리가 이어졌다. 다행인지 아닌지 일단 아픔은 없었는데, 대신에 수갑이 눌러대는 묵직함만은 있어서 그 때문에 오히려 더 불안했다. 그렇게 신경이 닳는 듯한 몇 초간의 시간이 지났다. 약간 커다란 철커덩 소리를 마지막으로 불길한 쇳소리도 끝을 고했고⋯⋯
나는 내 손목이 심히 가벼워졌음을 느꼈다.
“어?”
재빨리 고개를 들어 손목을 쳐다봤다.
수갑이 없었다.
“차피 도망갈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으니까 그냥 풀어줄게. 조금이나마 긴장을 풀 수 있다면야, 그정도야 뭐.”
별로 대수롭지도 않다는 듯한 말투였다.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아니, 물론 아무리 그래도 반년 동안 수갑을 쭉 차고 있을 것 같지는 않으니 언젠가는 풀어줄 거라고 예상을 하기는 했었다. 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빨리 풀어줄 줄은 미처 예상치 못했다. 대체 무슨 의도지? 남자는 내 긴장을 풀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정말로 그것 뿐일까? 무언가 다른 뜻이 있지는 않을까?
하지만 거듭되는 의심과는 상반되게 손이 자유로워진 것에 적지않은 해방감과 안도감을 느끼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나는 바로 방금 전까지 구속되어있었던 자신의 손목을 매만져보았다. 피부가 약간 빨개진 거 외에는 이렇다 할 이상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움직임이 가벼워져서 상쾌할 뿐이었다.
“자, 차나 마시자?”
여전히 평온한 목소리로 남자가 말했다. 그리고는 부드러운 동작으로 차를 입에 가져다 댔다. 그걸 보며 나는 얼떨떨함 반, 의심스러움 반의 심정으로 조심스럽게 찻잔에 손을 대었다.
차는 맛있었다.
거리낄 것 하나 없이, 정말로 맛있었다.